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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는 믿을 게 못된다?
작성자 : 이종호  |  2015-12-13 22:23:52

의지는 믿을 게 못된다?

 

폭식증 있는 분들을 치료했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의지란 건 도저히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 어떤 심한 폭식증 환자분은 한 달을 참고, 때로는 40일까지도 참아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돌이켜보니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폭식을 하고 있고 살도 너무 쪘는 데다가 위장병은 기본이고 몸이 여기저기 많이 아픈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40일씩이나 폭식을 참았던 분에게 의지가 약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으니, 결국 어떤 큰 변화를 위해서는 의지가 작용하는 정도가 우리 생각보다는 작은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그분은 치료 후에 좋아졌고, 치료에서 중요시 한 것은 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식증이 아니라도 요즘 세상에 가장 중요한 정신적인 문제는 중독이라고 본다. 유명 야구 스타들이 도박을 하다가 걸린 걸 봐도 도박중독은 심각한 문제다. 남학생들은 거의 게임중독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알콜 중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병원에서 처방되는 약물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다. 중독은 물질을 넘어 사랑중독이나 관계중독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 백미를 장식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거의 온 국민이 반은 중독상태인 스마트폰이다.

 

중독은 과거와 같이 마음이나 의지의 문제로 보지 않고 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생기는 뇌의 질환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약물치료의 중요성도 매우 커졌고, 뇌를 안정시켜주기 때문에 효과를 인정받고 있는 명상치료도 있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중독을 바라보면, 의지는 전두엽이라는 곳의 기능이다. 그런데 이 부분의 작용은 뇌 전체로 보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 부분은 초당 50 글자(바이트) 정도 밖에 처리하지 못하는데, 무의식적인 부분은 수 메가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음식을 보고 갈망하는 가운데 흐르는 정보의 양이 그것을 보고 억제하려는 의지의 양에 비해서 수십만배나 더 많다는 의미이다. 마치 360도의 원모양의 성곽 중에서 1도 정도의 부분에만 수비를 하는 군사가 있고, 적군은 온 사방에서 다 쳐들어 오는 것과 마찬가지인 전투와 같다. 아무리 수비군사가 잘 지켜도 이미 다른 곳은 적군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따라서 이 싸움은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 한 가지 희망이 있다. 수비하는 군사들은 성의 일부만 지키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에는 의병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공격자의 숫자만큼 많고 똑같은 방식으로 싸운다. 적군이 중독이라는 나쁜 습관이면, 의병들은 좋은 습관이다. 그런데 이 의병은 의지라는 군사들의 말을 들으니 군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싸우기 보다는 의병을 잘 훈련시키면 된다.

 

중독은 특정 조건이 주어지면 활성화되는 스위치같다.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면 자동적으로 그것을 채워줄 음식을 찾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안 되는 시간 만들어서 술을 같이 마실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지하철만 타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에서 게임을 켠다. 그래서 우선 스위치가 켜지는 조건을 달리해야 한다. 술에 쩔어사는 20대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었고, 술로 생기는 문제를 잘 알고 어떻게든 끊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면담을 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취업을 했는데, 퇴근하고 나면 저녁이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은 자취방으로 갔다. 취미도, 종교도, 인맥도 없었다. 그렇다고 드라마로 시간을 보내는 건 20대 남자에게는 잘 안 맞는 옷과 같았다. 그러니 참고 또 참으려 해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처방은 물론 저녁 시간을 달리 보낼 수 있게 하는 활동이었다.

 

중독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자포자기하는 마음이다. 이런 자포자기는 의지가 클수록 더 크다. 강한 의지로 오래 참았던 사람들이 더 크게 다 포기해버리고 더 심하게 반대로 튄다. 많이 눌린 용수철이 더 세게 튀는 것과 같다. 이때 해줄 수 있는 말은,

 

“연타를 맞지 않으면 이긴다”이다.

 

잘 던지던 투수가 지는 이유는 홈런 한방을 맞아서가 아니라 그 홈런을 맞고 페이스를 잃어서이다. 이는 어떤 운동이나 게임, 주식투자, 인생살이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이치이다.

 

처음에는 환자분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리듬이 깨질 때가 좋은 기회라고 하니 너무 상식과 어긋나고, 직관에 반한다. 하지만 그 리듬이 깨지고 나서 잘 조절을 하면,

 

게임장에서 3일을 있던 사람이 그 다음날 출근을 해서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고,

피자를 한 판을 다 먹었다고 해도 편하게 받아들이면 이주간의 폭식의 시작점이 새로운 다이어트를 하는 날이 되고,

술을 마셨어도 그날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 가족들이 “아직은...”하고 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처음에 말한 그 폭식증 환자분은 40일을 참고 그게 깨지면 2주 정도를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폭식을 했다. 나하고 치료를 한 이후에는 10일 정도를 참고, 폭식을 하루만 하고 다시 참았다. 물론 치료가 진행될수록 그 기간은 10일에서 2주, 한 달로 늘어났다. 어쩌다 하루니까, 체중도 줄고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도 없어지니까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편해졌다.

 

물론 의지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의지는 400 kg이 나가는 소 한 마리 잡아도 한 근도 채 나오지 않은 토시살이나 제비추리처럼 귀한 것이어서 제대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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